“호남산조춤 세계화의 꿈 꼭 이룰 터”

‘전북 인간문화재’ 40여 년간 정든 강단 떠나 춤사위 훨훨
 익산시립무용단 창립 등 한국무용 계승‧발전 지대한 ‘공헌’
 제자 중 대한민국 다섯 손가락 안 ‘명무’ 나오는 게 소원

‘金娥 李吉珠’(금아 이길주).

우리시대 최고의 춤꾼 이길주 교수(65) 명함에 적힌 한자 이름과 호다.

그의 호는 金娥(금아)다. 김제에 사는 지인이 항아(달)처럼 빼어나게 춤을 추라고 지어준 또 다른 이름이다.

이름 석 자 바로 밑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47호 호남산조무 보유자’라는 글자가 아주 조그맣게 박혀있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5호 호남살풀이춤 최선 명인의 애제자인 그는 호남산조춤의 명인이다.

살풀이춤(이매방) 이수자이기도 한 그는 (사)호남춤연구회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호남을 중심으로 산재해 있는 춤을 찾아 발굴하고 발전시킨 한국무용의 대가다.

풍부한 예술성을 지닌 춤꾼이자 안무가, 그리고 연출가로 평생을 살아 온 이길주.

그런 그가 40여 년간 정든 강단을 떠났다. 지난 8월 31일자로 원광대학교 무용학과 교수직을 내려놓고, 자유인으로 돌아왔다.

원광대학교 사범대 무용학과는 1981년 그가 도내 최초로 만들었기에 남다른 애정과 애환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우리나라 내로라하는 제자들 길러내

경희대학교과 경희대 대학원에서 무용을 전공한 그는 1974년 기전대학 시간강사를 시작으로 41년간 올곧이 후진 양성에 매진했다.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간 제자만도 수천여명. 대학을 졸업한 이들은 지금 학교와 국립국악원, 시립국악원 등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춤꾼’으로 살아가고 있다.

수많은 애제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를 말해달라는 부탁에 그는 의외로 남자 무용가 4명을 손가락으로 꼽았다.

바로 이강용(대전시립 지도위원)‧박종필‧노수은(김포시의원)‧김진원(서울시립 지도위원) 등 모두 내로라하는 우리나라 중견무용가들이다.

애제자로는 김명신 원광대학교 무용과 강사를 제일 먼저 꼽았다. 김 강사는 든든한 제자이자 평생 동반자다.
다음으로 고명구 (사)한국무용협회 익산지부장을 들었다. 1회 졸업생인 그녀는 춤 인생 40여 년 동안 오롯이 고향 익산 무대를 지키며 예술혼을 불사르는 정열의 춤꾼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최선 선생에 춤 배워

그는 한국무용을 전공해 창작과 공연을 아우르는 교육자로 살아온 삶에 대해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그도 그걸 것이 인생 최고의 스승인 ‘최선 명인’을 만났기 때문. 5살 유치원 때부터 춤을 시작한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무렵 ‘한국무용의 명인’ 최선 선생에게 개인 교습을 받았다. 아예 집에 모셔 와서 배우는 강행군이었다.

어린 나이에 뼈를 깎는 맹연습이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는 실력에 몸은 피곤해도 마음만은 항상 날아갈 듯 가벼웠다.

기초를 다진 그에게 선생은 전주 권번 이초월 기생이 추던 ‘산조춤’을 가르쳐 주었다.

승무와 살풀이춤에 버금가는 산조춤은 어렵기로 소문난 무용. 음악이 느린 것부터 빠른 것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춤사위를 맞추기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웬만한 무용가들도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학사와 석사 논문을 산조 춤으로 썼다. 무대에서도 산조춤을 멋들어지게 추어 ‘타고 난 춤꾼’이란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산조춤을 계승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다보니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이수자가 되고, 호남산조춤 전북도 무형문화재가 됐다.

그는 “정말 일평생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스스로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이룬다. 수 십, 아니 수 백 명이 호남산조춤을 배웠지만, 현재 추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노력하는 자에겐 반드시 영광과 행운이 따른다고 말한다.

#전수자 길러내는데 마지막 불꽃 태운다

40여 년 간을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온 그는 좀 쉴 법도 하지만 여전히 바쁜 나날이다. 일주일이면 호남산조춤 전수관이 있는 전주를 비롯해 익산, 서울 등 전국을 오고간다.

교수 시절보다 오히려 더 시간에 쫓긴다는 그에게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그는 제일 먼저 ‘사랑방춤‧풍류방춤’을 추고 싶다고 말했다. 옛날 기생들이 기방에서 추던 우리 전통춤인 ‘방안춤’을 일컫는다. 그는 춤사위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손끝과 버선발의 움직임, 호흡까지 보여 서로 감흥을 느낄 수 있는 ‘방안춤’을 보다 많은 관객들에게 선보일 생각이다.

“방안춤은 가장 가까이에서 감흥을 느낄 수 있다. 춤꾼의 섬세한 부분까지 볼 수 있다. 우리 전통춤은 물론 큰 무대에도 올라야 하지만, 풍류방과 사랑방에서 추어야 제 맛이다.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작은 소극장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익산 예지원에서 매달 선보이던 공연(풍류방)을 지난해 접었다. 관객의 호응이 없고, 경제적으로 힘 들어 어쩔 수 없이 막을 내렸다.

하지만 조만간 전주에서 풍류방 공연을 살려볼 심산이다. 대들보와 서까래가 전통춤과 어울리는 전주전통문화센터 근처 건물에서 ‘풍류방’에 맞는 밑그림을 그려볼 계획이다.

그는 전주 아중리에 있는 ‘호남산조춤 전수관’에서 전수자 양성에도 게을리 하지 않을 생각이다. 40년 넘게 살아온 익산의 보금자리는 원광대 대학원 수업 차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들린다.

부군인 민용태 체코 브르노국립예술대학 석좌교수가 기다리는 서울은 강의가 있는 월‧토요일 두 차례밖에 갈 수가 없어 여전히 애틋하기만 하다.

#인간문화재 아니었으면 ‘껍데기만 남은 삶’

“인간문화재 아니었으면 껍데기만 남았을 것이다. 춤으로 몸만 다 망가졌다. 무릎을 너무 써서 의사가 살려면 춤사위를 놓으라고 했다.”

그는 평생을 춤을 추고, 배우며 살았다. 작품을 만들어 공연을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돈이 되면 개인교습비로 썼다.

하지만 그는 요즘 학생들이 1980년대 제자 같이 않다고 말한다. 전수를 시키려고 해도 배우려는 학생이 없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대학을 마친 후 취직에만 급급한 것도 못내 아쉽다.

예술분야는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금도 50대 제자들이 배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걸 보며 위안거리로 삼기도 한다.

#“나에게 춤은 곧 삶이자 꿈이다”

5살 때부터 춤사위를 익힌 그는 ‘춤은 곧 삶’이라고 말한다. 결혼 생활과 가정은 항상 춤 앞에 뒤편으로 물러났다.

때문에 그는 호남산조춤을 살풀이춤과 승무 버금가는 춤으로 승화시킬 욕심이다. 세계적 춤으로 발전시킨다는 게 그의 일생 일대 꿈.

“호남산조춤은 누가 봐도 좋다. 맛이 있다고 이구동성이다. 속이 꽉 차있다. 서서 혼자 추는 춤이라 춤사위가 전부 다르다. 세계화 된 춤이다.”

그의 또 다른 꿈은 제자 중 대한민국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무’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호남산조춤을 통해 ‘이길주’ 버금가는 춤꾼이 태어나도록 가르치는 게 자신의 의무라는 것.

삶 자체가 춤이고, 취미도 춤이라고 말하는 ‘이 시대 최고의 춤꾼’ 이길주 명인. 그의 멋진 제2의 인생이 기대된다. /글=조영곤 기자‧사진=황정아 기자

#이길주 교수가 걸어 온 길
- 국민훈장 석류장 서훈
- 황조근정훈장 서훈
- 전라북도 문화상 수상
- 전라북도 예술상 수상
- 대한민국 무용제 연기상 수상
- 이태리 시실리 댄스페스티발 그랑프리 수상
- 터키 골든 가라고즈 민속무용경연대회 그랑프리 수상
- 세계 40여개국 순회 공연
-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이수자
- 전라북도 문화재위원 역임
- 익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역임
- 원광대학교 무용과 교수 역임
- 한국전통춤협회 부이사장
- (사)호남춤연구회 이사장
-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47호 호남산조춤 보유자
- 주요안무작품 = 황진이, 입맞춤의 땅, 산녀, 고려장, 어제 네일이여, 인당수 푸른 물을, 검정고무신, 마지막 황후 노을로 타다, 나무나비나라, 무영탑, 피의결혼 등 다수

조영곤 기자  ikope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익산열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