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노인종합복지관장

복지관 뒤편 마을에 살고 계셔서 매일 익산시노인종합복지관을 찾아주시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작년부터는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요양원에 계시지만, 문득 그 어머니가 생각이 나는 순간이 많이 있어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언젠가 사무실에서 바쁜 일상에 치여 아침부터 서류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일정이 빡빡해 빨리 마무리 하고자 정신없는 상황인데 그 어머니께서 대뜸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더니 “야 이놈아! 너는 왜 책상에 가만히 앉아있냐?”라고 큰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겁니다. 제가 놀라서 “어머니, 혹시 무슨 일 있으신가요?”라고 여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나와서 청소하고 있는데, 너는 왜 의자에 앉아 있냐? 이놈아!”라고 하시는 겁니다.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그 어머니의 말씀은 저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청소는 직원들이 분담하여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직원들이 청소하고 있는 시간에 관장인 저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원들도 청소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맡은 자신만의 일이 있음에도 시간을 내어서 복지관을 정리하는 것인데...

그순간 깊은 성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말씀을 듣자마자 바로 나가 동료들과 함께 청소를 했고, 그 사건 이후로는 직원들과 같이 청소하는 것도 저의 일로 삼아 아무리 바빠도 동료들과 같이 복지관 환경개선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또 하루는 그 어머니께서 사무실에 오셔서 제 뒤통수를 때리신 일이 있습니다. 순간 당황하여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저에게 어머니는 “너 왜 맨날 나와서 일하고 있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파요. 제가 일할게 많고, 너무 바빠서 그래요”라고 답하자 “토요일도 나오고, 일요일도 나오고, 이놈아! 그러다 너 죽어. 사람이 쉬어가면서 일을 해야지. 너 아니어도 여기 있는 직원들 다 일 잘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도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장 닥쳐있는 일이 많아 그것만을 해결하기 위해 급급하다보니 더 넓은 그림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혼자 달리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달리면 더 멀리 나갈 수 있다’는 한 속담처럼 일에만 빠지지 않고, 가정과 이웃, 동료들을 더욱 챙기는 것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느리지만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어르신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 중 눈치를 채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직원들과 노인복지를 향한 장기적인 비전을 소통하고 공유하는 방향성 설정의 시간이 필요하겠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일화에 등장한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신 어르신이었습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병세가 약화되어 요양 시설에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치매를 가진 노인을 조금은 기피합니다. 오히려 일부 사람들은 사회 문제라면서 증상에 대한 이해 없이 무조건 그들을 요양시설에 보내야만 한다고 극단적으로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가 요즘 유독 이 어머니가 그리워지는 이유는 그분만이 가지고 있는 타인에 대한 영향력이 조금 독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장인 저에게 복지관 내에서 직설적으로 비판을 해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만, 치매를 앓고 계시던 그 어머니는 유일하게 저에게 매번 호통을 치며 깊은 깨달음을 주시던 분이었습니다.

공감과 이해보다는 혐오와 배척이 더욱 쉽게 느껴지는 세상에서 치매가 있으신 어머니를 위해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도록 도우면서 어려운 길을 걸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익산시노인종합복지관은 인지지원 서비스와 치매안심센터와의 연계 등의 노력을 통해 경증 치매를 가진 어르신의 나은 생활을 위하여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역의 다양한 사정이 있는 어르신 모두가 하나 되어 이용 가능한 기관을 만들기 위하여 오늘도 저와 동료들은 비전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 어머니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고자 노력합니다.

익산열린신문  ikope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익산열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