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규 원광중학교장, 수필가

집에 사람이 찾아온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정현종 시인은 그의 시 ‘방문객’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생략).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일은 아니지만 학생이 제 발로 교장실을 찾는 것이 나에게는 참 행복한 일이다.

이번 겨울 방학 기간에 교실 천장 석면 제거 공사를 하기로 하였다.

공사 기간을 확보하려면 부득이 봄방학을 없애야 한다. 1월 초까지 수업을 진행해야 2학기 수업 일수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내일이다. 오전에 1, 2학년 종업식을 마치고 오후에는 3학년 졸업식이 이어진다. 며칠 새, 학년말 업무 마무리에 각종 회의까지 겹쳐 학교 전체가 어수선하고 덩달아 마음이 급했다.

오늘 아침 간부회의 시간이었다. 누군가 교장실 문을 힘차게 두드렸다.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데 낯이 익은 녀석들이었다. 내일 졸업식 주인공들이었다.

어찌 왔느냐고 물으니 졸업을 앞두고 교장에게 미리 인사하러 왔다고 했다. 반갑고 고마웠다.

한 명씩 덥석덥석 안아주었다. 그러고 나서 미리 졸업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다. 한 녀석이 교장실을 나가 문 뒤에 숨어 버렸다. 사진 찍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잘 달래어 옆자리에 세웠다. 그 가운데 두어 명은 교복에 보푸라기일 듯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심하게 홍역을 앓았다. 담임 선생님 애간장을 녹였다. 학생부 선생님들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흔히 사람은 열두 번 변한다고 한다.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처럼 정해진 궤도만 걷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따금 한눈팔다 보면 돌부리에 걸려 휘청거릴 때도 있다. 깜깜한 밤중에 발을 헛디뎌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게 헤매다 넘어지고 깨질 때도 있다. 다시 추스르고 가다 보면 조금 늦을 수 있다.

요즘 중학생을 가리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고 한다. 제일 무섭다고 한다. 갈팡질팡하던 그 시간도 지나고 보면 찰나에 불과하다. 잠시 한눈팔았다가 제 길을 찾으면 된다. 그래서 열두 번 바뀌게 되는 것이다.

엊그제, 졸업생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정리했다. 결혼식 주례사와 졸업식 회고사에서 하고 싶은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것은 큰 효과가 없다. 적어도 내 경험에 따르면 그렇다. 재주껏 최대한 줄였다.

"졸업생 여러분! 후회해도, 후회하지 않아도 시간은 흐릅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남이 시키는 일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는 연습을 하세요. 비틀거리고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가다 보면 더 재미있고 가슴 뛰는 일이 보일 것입니다. 그때 꽉 움켜잡으면 됩니다. 제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시간을 빌려 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껴 쓸 수는 있습니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책을 읽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즐기며 살았던 사람이 지은 책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책을 읽으면서 그 사람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 가지만 더 당부합니다. 우리는 절대 혼자서 살 수 없습니다. 내 이웃에 관심 가지고 공감하여야 합니다. 그들과 나누고 연대하여야 합니다. 연대란 다른 이들과 한 덩어리로 굳게 뭉친다는 것입니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기꺼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하고,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훈훈한 인성을 지닌 귀공자가 되어 주기 바랍니다.”

다 쓰고 나서 나의 중학생 시절을 돌아보았다. 의기양양했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졌다. 둘러보아도 내 편은 없었다. 그 무렵 내게 세상은 온통 회색 빛깔이었다. 아팠다. 철들고 처음 겪는 고통이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강한 척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아니, 그런 아픔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오늘 내 품에 안긴 학생들은 이미 된통 아팠다. 그 녀석들이 아침부터 내게 기쁨을 잔뜩 주고 갔다. 환한 표정을 보니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는 훈훈한 사람이 되라고 기도했다. 오늘 아침 귀한 손님들 덕분에 내 마음의 평수가 넓어졌다.

익산열린신문  ikope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익산열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